[아시아경제] 래미안 샤워기 만들다가 어르신 손잡이 제작하는 이유[인생3막 기업]
작성자 : 관리자 작성일 : 2024.08.26 조회수 : 64
■ 류인식 세비앙(CEBIEN) 대표
-욕실업계에서 창업한 이유가 궁금하다. 창업 전에는 뭘 했는지.
▲1980년대에 욕실 제품 전문 회사인 '대림통상'에 입사해서 7년을 다녔다. 영업팀에서 건설업체 출입하는 업무를 맡았는데, 나도 사업을 해보고 싶더라. 그래서 대책 없이 34살에 창업했다. 1990년대 초반에 창업해서 데스밸리(창업 초반 수익 창출 전 자금·자원 부족으로 위기를 겪는 시기)도 지나 봤고, 외환위기도 겪었다.
-스타트업으로서 외환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.
▲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바닥까지 내려온 덕분에 다시 딛고 올라갈 수 있어 좋았다. 일하느라 바빠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책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. 그러다 다행히 그 시절 삼성물산(당시 삼성종합건설)의 아파트 브랜드 '래미안'이 론칭됐는데, 차별화된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개발한 바디샤워기가 뽑혔다. 당시 욕실업계에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라 디자인 차별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. 그때 본 물량을 납품하면서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었다.
-욕실업계에서 쭉 일했는데, 실내 안전손잡이를 개발하게 된 이유는 뭔가.
▲2004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해외 연수를 갔을 때다. 이탈리아에 있는 호텔에 묵었던 날, 호텔 욕실에 들어갔더니 파이프 두 개가 욕실 내부에 둘러져 있더라. 욕실을 돌면서 잡을 수 있는 형태였다.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, 당시 우리나라에서 손잡이는 기능적인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. 그런데 욕실에서 내가 본 손잡이는 욕실 분위기에 잘 스며드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다. 그때 '손잡이도 예쁠 수 있구나' 하는 생각에 머리를 얻어맞는 듯했다. 당시 한국의 감성, 경제력, 디자인 감각 등은 이탈리아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. 수입도 푸대접받으면서 해올 때다. 결국 그때의 경험이 나에게 '상상의 뚜껑'을 열어준 셈이다. 그때 꼭 이런 손잡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.
-실제로 직접 개발해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오래 걸린 것 같다.
▲다시 돌아와서 다른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. 그러다 몇 년 후 나이 든 어머님 댁에 황토방을 하나 만들어드리면서 욕실을 고쳐드렸다. 욕실에 설치할 안전손잡이를 사려고 했더니 그 당시에 2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다는 걸 알았다. 그거 말고는 너무 대중적이고 기능적이기만 한 저렴한 손잡이가 대부분이었다. 그 중간이 없더라. 그때 다시 결심하고 연구에 들어갔고, 2012년에 론칭했다. 그때 칭찬을 많이 받았다.
-안전손잡이에도 디자인 철학을 담은 건가.
▲어떤 제품에 대한 디자인이 고정되면 그 디자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. 그래서 나는 노인용·의료용 손잡이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'병원에서 환자들이 잡는 손잡이'라는 이미지와는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. 그래서 원목 소재를 도입한 거다. 집 안의 오브제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. 일상생활 용품처럼 예술과 무관한 물건이지만, 인테리어적 감성이 담겨있어 '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아름답게' 만드는 물건 말이다.
-어떤 점이 디자인적으로 다른 건가. 좀 더 설명해달라.
▲원목 손잡이의 경우 단단하고 강한 100% 천연 원목만을 사용했다. 인체공학적인 안전 각도로 만들어 미끄럽지 않고, 살짝만 잡아도 매달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. 원목인 만큼 실내 온도 변화에 따라 차갑거나 뜨겁지 않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. 어두울 때는 손잡이에 둘러 있는 야광띠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. 또, 볼트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 깔끔한 인상을 준다.
지난해에는 모듈형 컬러 안전손잡이 CP시리즈(Comfortable & Powerful) 제품으로 '2023 대한민국 굿디자인 어워드' 은상을 수상했다. 이 제품은 원목 베이스는 아니고, 부드러운 색의 친환경 실리콘을 적용해 차가운 이미지를 없앴다.
-아직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적용받는 복지용구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, 민간 시장 진출도 계획하고 있는지. 수요가 있을 거라고 보나.
▲내년부터 민수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. 첫해 연 5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. 사회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, 어르신들의 자녀들도 늙고 있다. 이러한 제품의 필요성은 직접 늙어봐야, 아파봐야 알 수 있다. 자식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낙상사고 등 부모님이 집안에서도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공감하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. 그러면서 기능적으로도 탁월하고, 디자인적으로도 예쁜 안전손잡이를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. 남을 따라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우리만의 디자인을 만들어서 우리 시대가 원하는 그 라이프 스타일을 잘 해석해 반영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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